2018. 08. 20 - 09. 07
사적인 시간, 사적인 공간을 축적하는 법
집과 죽음, 그리고 기억에 대한 화두는 박인선이 작업초반부터 지녀온 모티브로 작용
해왔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자연으로 돌아갈까?’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상처받은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으로 회귀한다. 그의 새로운 작업은 ‘자연’에서
사고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그는 건물 콘크리트 벽의 부식이나 페인트가 벗겨지는
모습들에서 자연의 생과 사를 발견하고, 건물도 햇빛과 바람에 의해서 조금씩 자연에
체화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건물이나 집과 같은 인공물에도 생명이 있다고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Animism의 원시신앙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의 작업 <응집, 그리고 이완> 연작에서는 자연과 집(혹은 건물)을 조합한 작업을
선보인다. 지구가 연상되는 ‘구’의 표면이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있기도 하고, 나무가
집을 뚫고 나오기도 하며, 사각뿔로 잘려진 건물 위에 바다나, 대지가 펼쳐진다. 그는
자연과 인공물에 대한 관계를 역전시킴으로써 자연과 인공물의 조우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의 변화는 개인사와 그것을 받아들이고 치유하는 과정이다. 박인선의 작
품에서 등장하는 건물의 콘크리트 면은 그 건물의 역사와 기억을 담은 흔적이며, 칼
로 자른 듯한 잘려진 면과 흔적들은 폭력성과 상처이기도 하다. 그는 자연물과 인공
물을 ‘조합’하고 표면을 ‘잘라내는’ 그만의 방식으로 그의 사적인 시간들과 공간들을
축적한다. 이질적인 요소의 결합과 자연과 인공물의 반전은 그의 응축된 기억을 이완
시키는 장치이다.
‘사라짐’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그의 예민한 시각은 ‘집’이라는 상징물 속에 응축되어
있다. 결국, 집에 대한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며,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며,
또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 개인의 이야기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류의 이야
기로 확장된다.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이면서 그것이 곧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에 설
득력을 가진다.<소나영>